충남 서산의 들판 한가운데, 수백 년의 시간을 껴안은 돌담이 서 있습니다. 바로 해미읍성. 지금은 가족 나들이나 역사 체험지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단지 과거의 성이 아니라, 수많은 삶과 죽음, 저항과 믿음이 교차한 '역사의 압축판'입니다.
1. 조선 이전, 고려와 백제의 기억 위에 세워진 땅
해미는 예부터 군사적·행정적 요충지였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해미현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관청과 병영이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의 군사 활동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따라서 해미읍성이 조선 세종 18년(1436년)에 처음 축성되었더라도, 그 땅의 기억은 훨씬 더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돌 아래 묻힌 시간의 결은 결코 얕지 않습니다.
2. 조선 시대의 해미읍성 – ‘질서와 억압의 성’
지금 우리가 걷는 해미읍성은 조선의 군사 요새로 탄생했습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 거점이었고, 충청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며 명령과 질서를 지키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곳은 또 다른 성격을 갖게 됩니다. 19세기 후반, 조선 후기의 천주교 박해기. 해미읍성은 수많은 신자들이 잡혀오고, 고문당하고, 처형된 비극의 무대가 됩니다.
한때는 나라를 지키던 성이었고, 어느 날은 신념을 지키려는 이들이 피 흘리던 감옥이 되었던 해미읍성.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닌, ‘신념과 억압, 저항’이 얽힌 역사적 공간입니다.
이제 이 성벽을 따라 걷는다는 건, 과거의 사람들과 숨결을 나누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물에 물든 피, 천주교 박해의 현장”
해미읍성을 찾은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 바로 ‘피의 우물’입니다. 19세기 조선 후기,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이곳은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순교의 터전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의 피가 우물로 흘러 들어가 물이 붉게 물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우물은 지금도 성 내부에 남아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해질 무렵, 성문에 나타나는 하얀 여인”
해미읍성의 또 다른 전설. 성문 근처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밤마다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해지기로는 억울하게 죽은 여종 또는 박해당한 신자의 혼령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일부 주민들은 밤에 성 근처를 지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는군요.
“검붉은 장대석, 전장의 한”
성 내부 장대석(지휘석)에 얽힌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한 장수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이곳에서 자결했는데, 그 피가 돌에 스며들어 색이 변했다는 전설입니다. 이후 이 돌 위에 오르면 몸이 아프거나 악몽을 꾼다는 미신도 전해집니다.
“거북이를 닮은 성, 풍수지리의 수호신”
흥미롭게도 해미읍성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은 거북이가 마을을 보호한다고 믿으며, 이 성이 재난을 막는 수호 성지 역할을 해왔다고 전해줍니다.
해미읍성 관람 정보 및 팁
- 위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 관람 시간: 매일 09:00~18:00 (동절기 17:00까지)
- 입장료: 무료
- 주차: 무료 주차장 완비
관람 포인트 TOP 3
- 피의 우물: 해미읍성의 핵심 전설 포인트. 성 안 중심부에 위치.
- 순교탑 & 천주교 순례 성지: 종교적 의미가 깊은 장소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묵상할 수 있는 공간.
- 성곽 산책로: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서산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즐길 수 있습니다.
추천 관람 코스
남문 입장 → 피의 우물 → 순교탑 → 장대석 지휘대 → 성곽 산책로 → 북문 출구
마무리: 전설을 품은 그곳, 역사를 걷다
해미읍성은 단순한 옛 성이 아니라, 고통과 신념, 저항의 이야기가 담긴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피로 물든 우물, 밤의 하얀 여인, 거북의 형상을 품은 성. 역사와 전설이 맞닿은 이곳에서, 우리는 조용히 과거를 걷고, 오늘을 되새기게 됩니다.
충남 서산을 찾는다면, 해미읍성은 반드시 들러야 할 역사 명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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